오늘의 NBACreated by H3LUV
TODAY'S COLUMN

우승하지 못한 감독이 NBA를 바꿨다

돈 넬슨, 시대보다 먼저 도착했던 농구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H3LUV · support by GPT · 2026-08-10
돈 넬슨은 감독으로 우승하지 못했지만 포인트 포워드, 스몰볼, 포지션리스 농구와 외곽형 빅맨이라는 현대 NBA의 문법을 수십 년 먼저 실험했고, 결국 자신이 상상한 농구가 리그의 표준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농구에는 두 종류의 위대한 감독이 있다. 누구보다 많이 우승한 감독이 있고, 사람들이 농구를 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놓은 감독이 있다. 돈 넬슨은 두 번째였다. 2026년 8월 9일, NBA 역사에서 가장 독특했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였다.

그가 남긴 숫자는 거대하다. 31시즌 동안 NBA 감독으로 1,335승. 은퇴 당시 역대 최다승이었고 현재도 그렉 포포비치에 이어 역대 2위다. 올해의 감독상을 세 차례 받았고 18차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선수 시절에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다섯 개의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감독 돈 넬슨에게는 NBA 파이널 진출도, 우승도 없다.

그래서 우승 횟수로 감독을 줄 세우면 넬슨은 필 잭슨이나 레드 아워백, 팻 라일리, 포포비치보다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날 NBA가 농구하는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은 누구인가. 그 명단에서 돈 넬슨을 빼기는 어렵다.

지금 NBA에서는 포워드가 공을 운반하고, 센터가 3점 라인 밖에 서며, 상대 센터가 느리면 작은 라인업으로 코트에서 쫓아내는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포지션보다 볼 핸들링과 슈팅, 패싱 능력을 먼저 보고 미스매치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2026년에는 평범한 농구지만 넬슨이 이런 농구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변칙이었다.

밀워키를 맡았던 1980년대부터 넬슨은 전통적인 포지션 개념을 흔들었다. 마퀴스 존슨과 폴 프레시 같은 포워드에게 단순 득점이 아니라 공격 전개까지 맡겼다. 훗날 포인트 포워드라 불릴 역할이었다. 그에게 포지션은 규칙이 아니라 편의상 붙인 이름에 가까웠다. 왜 가장 큰 선수가 반드시 골밑에 있어야 하는가. 왜 포인트가드만 공격을 시작해야 하는가. 넬슨은 그런 질문을 리그가 준비되기 전에 던졌다.

골든스테이트에서는 그의 농구가 더 선명해졌다.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먼드, 크리스 멀린의 Run TMC. 빅맨 중심 농구가 당연했던 시대에 넬슨은 세 명의 스킬 플레이어를 앞세워 빠르게 달리고 공격했다. 상대보다 클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기술이 좋으면 됐다. 당시에는 실험이었지만 훗날 리그 전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더크 노비츠키를 바라본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7피트에 가까운 선수를 골밑에 묶어두는 대신 외곽으로 끌어냈다. 큰 수비수가 따라오면 공간을 벌리고, 작은 선수가 붙으면 사이즈를 이용했다. 지금은 빅맨의 외곽슛과 볼 운반이 이상하지 않지만 1990년대에는 달랐다. 넬슨은 선수에게 포지션에 맞는 농구를 요구하기보다 선수의 재능에 맞춰 포지션을 다시 정의했다.

그의 감독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은 어쩌면 우승이 아니라 2007년 플레이오프였다. 42승 40패의 서부 8번 시드 골든스테이트는 67승 15패의 1번 시드 댈러스를 4승 2패로 무너뜨렸다. We Believe Warriors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댈러스가 넬슨이 오랫동안 만들었던 팀이라는 사실이다. 노비츠키를 키우고 스티브 내시와 마이클 핀리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농구를 만든 사람이 바로 넬슨이었다.

넬슨은 작은 라인업과 빠른 공격으로 자신이 만든 팀의 약점을 공격했다. 정석으로 더 강한 팀을 이길 수 없다면 정석 자체를 버렸다. 그것이 넬슨다운 농구였다.

물론 냉정하게 볼 부분도 있다. 넬슨의 공격적 실험은 플레이오프에서 사이즈와 수비, 리바운드 문제를 반복적으로 드러냈다. Run TMC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고, 밀워키에서도 강팀을 만들었지만 파이널에는 가지 못했다. 감독으로 2,398경기를 치렀지만 NBA 파이널 무대에서 지휘한 적은 없다. 그의 커리어에서 지울 수 없는 한계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넬슨이 우승하지 못했던 방식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승하기 위한 방식이 됐기 때문이다. 2015년 골든스테이트가 우승했을 때 드레이먼드 그린이 센터로 뛰었고 스테픈 커리와 클레이 톰슨이 3점 라인을 넓혔다. 그 팀을 넬슨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다만 골든스테이트라는 프랜차이즈에서 작게 뛰고, 빠르게 뛰고, 전통적인 포지션을 무시하는 농구가 가능하다는 상상력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묘하게도 넬슨의 마지막 감독 시즌은 2009-10시즌이었다. 스테픈 커리의 루키 시즌이다. Run TMC를 만들었던 감독이 NBA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선수의 첫 시즌을 직접 본 뒤 벤치를 떠난 셈이다.

감독으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지만 선수 돈 넬슨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며 1966년, 1968년, 1969년, 1974년, 1976년 다섯 차례 NBA 챔피언이 됐고 등번호 19번은 보스턴의 영구결번이 됐다. 선수에게는 우승 반지가 다섯 개, 감독에게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농구 역사에 더 큰 흔적을 남긴 쪽은 아마 감독 넬슨일 것이다.

돈 넬슨의 커리어를 숫자로 보면 1,335승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그 숫자보다 포인트 포워드, 스몰볼, 빠른 템포, 포지션리스 농구, 외곽에서 뛰는 빅맨, 미스매치 사냥 같은 단어들이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넬슨이 처음 그런 농구를 시도했을 때는 괴짜 취급을 받았고 너무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감독으로 우승하지 못했다는 꼬리표도 남았다. 하지만 농구 역사는 묘하다. 당대에는 이상해 보였던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나 상식이 되기도 한다. 돈 넬슨에게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NBA 챔피언 감독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자신이 상상했던 농구가 챔피언들의 농구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포워드가 공을 운반하고, 빅맨이 3점 라인 밖으로 나가고, 작은 라인업이 거대한 센터를 코트에서 몰아내는 시대. 한때 사람들은 그것을 Nellie Ball이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는 그냥 그것을 NBA 농구라고 부른다.

돈 넬슨, 1940-2026. 시대보다 먼저 도착했던 농구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핵심 정리

  • 돈 넬슨은 감독 통산 1,335승으로 NBA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 포인트 포워드와 스몰볼, 포지션리스 농구를 리그의 표준이 되기 훨씬 전부터 실험했다
  • Run TMC와 더크 노비츠키 활용, 2007년 We Believe Warriors는 그의 농구 철학을 상징한다
  • 감독으로 우승하지 못했지만 그가 상상했던 농구는 훗날 챔피언들의 농구가 됐다